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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조선 7대 왕 세조: 계유정난 수양대군 가계도, 어진, 생애 소개!] 영화 관상... 2013년 9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수양대군과 숙적 김종서 사이에서 일어나는 권력 투쟁을 그린 영화로 사람의 얼굴에 세상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는 관상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자랑하던 장면 중 하나인 수양대군의 등장신은 아직도 회자가 될 정도로 인상이 깊다. 

 

<영화 관상>

 

영화에서는 '이리의 상'을 가진 수양대군은 '호랑이의 상'을 가진 김종서와 대립하면서 숙적을 물리치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여 훗날 세조로 등극하는 역사적인 배경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수양대군... 즉 세조는 정변으로 왕위를 찬탈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 관상 역시 이러한 부분이 반영되어 '이리의 상'으로 극악무도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관상>

 

다만 재미있는 점은 영화에서 그려진 수양대군의 이미지는 실제 이당 김은호가 그린 어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둥글둥글한 얼굴형에 거의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실제 얼굴에서 야심을 읽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세조 나무위키>

 

과연 수양대군... 훗날의 세조는 어떤 인물일까? 세조라는 호칭보다 수양대군이라는 호칭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수양대군은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인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는 무예에 능하고 병서에 밝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5살이 될 때까지 사저에서 생활하였으며 입궐한 후 진평대군, 함평대군, 진양대군으로 여러 차례 칭호가 바뀌었고 최종적으로 수양대군이라는 군호를 받았다. 

 

<네이버 캐스트>

 

일반적으로 형인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치적이 잘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종 말년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였기 때문에 세종만큼 뛰어난 왕의 자질을 갖추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하고 종친인 동생(수양대군, 안평대군 등)들이 짱짱하게 버티고 있었던 만큼 왕권이 세종대에 비해 약해졌다. 특히 재위 2년 만에 문종이 죽게 되면서 결국 아들인 단종은 불우한 왕으로 남게 된다. 

 

<영화 관상>

 

수양대군은 왕자 시절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할 정도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지만... 일단 문종과 안평대군의 자질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함을 내밀 처지가 아니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극이나 영화를 보면 문종 재위 말기에 수양대군이 대놓고 야심을 드러내는 부분이 많이 강조되는데 실제로는 고개를 바싹 숙이고 존재감을 철저히 감춘 채로 살았다. 영화 관상에서의 모습처럼 수양대군이 야심을 드러내었다면 문종 대나 혹은 초기 단종대에 진작 제거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관상>

 

아무튼 문종의 수명은 매우 짧았고... 죽기 직전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고명 대신으로 임명하고 아들 단종을 보필토록 하였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김종서가 의정부와 군권을 장악하고 황보인 등과 함께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는 수양대군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작용된다. 이때 단종이 어려 정사를 잘 다스리지 못하자 김종서 등은 황표정사를 이용하여 인사권을 틀어쥐게 되고 소위 김종서 사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소위 국정농단에 가까운 행위를 벌이게 된다(이 부분은 수양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옹호하기도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한 행위로 비판하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든 부분인 듯).

 

<영화 관상>

  

수양대군은 왕이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에 큰 분노를 느꼈고... 이들의 칼자루가 자신을 향하는데 대해 큰 위협을 받고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된다. 영화처럼 수양대군은 책사 한명회의 계책에 따라 정치적인 모험을 하게 되는데...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것이다. 명나라에 가있는 동안 정적들을 방심시킨 후 김종서, 황보인 등을 척살하고 단종을 겁박하여 왕위를 선위 하도록 하였다. 

 

<공주의 남자>

 

계유정난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표현이 된다. 일단 조선시대 왕들은 정통성이라는 부분이 강조가 되는데... 역사적으로 최강의 정통성을 가진 왕인 숙종만 보더라도 어린 시절에 즉위하여 신하들에게 칼을 휘둘러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왕권을 다졌다. 하지만 세조의 경우 명분 없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정통성이 부족했다.

 

<영화 관상>

 

그가 재위한 기간 동안(1417-1468) 단종 시절에 약해졌던 왕권을 다시금 강화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로 작용된다. 다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훈구파라고 불리는 한명회, 신숙주, 서거정, 이극돈 등 공신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세조조차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즉 조선 말기 안동 김 씨처럼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로 변형되어 가면서 사림 세력과 정치적 충돌이 생겨나게 되고 다양한 권력투쟁이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영화 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조가 왕위에 오름으로 인해서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기존에 권력이 김종서와 황보인 등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집중되면서 의정부의 기능이 강화되었다면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직계제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국방력 신장에 힘쓰며 북방을 개척하였는데... 신숙주로 하여근 두만강 건너 야인을 소탕하고 평안, 강원, 황해도로 백성을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을 통해 국토 균형 발전에 힘썼다. 

 

<영화 관상>

 

경제정책에서는 과전법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과전을 폐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자만 토지를 지급하여 국가수입을 늘리기도 하였다. 또한 양잠을 권장하고 농서를 간행하였으며... 단종 복위 운동으로 집현전을 폐지하였으나 문교면에서는 제도를 정비하고 많은 서적을 편찬도록 하였다. 

 

<doopedia.co.kr>

 

세조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정희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경세자가 있지만 왕으로 즉위하기 전 2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의경세자가 죽은 후 둘째 아들 해양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어 1468년 즉위하였으나 즉위 1년여 만에 사망하였다. 이후 의경세자의 아들 자을산군이 조선의 89대 임금 성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영화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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