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과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세조)] 조선의 6대 국왕 단종은 어떤 인물일까? 우리들에게는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된 이후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비운의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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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문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 씨이다. 1448년(세종 30) 왕세손에 책봉된 후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아버지 문종은 병약하여 왕이 된 지 2년 만에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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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은 왕위에 오른 이래 2년만에 죽었기 때문에 별 업적이 없는 들러리와 같은 왕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종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버지 세종이 워낙 넘사벽의 태평성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존재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세종은 약 32년의 재위 기간을 지낸 왕으로 이 기간 동안 문종은 왕세자로서 세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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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 즉위 말에는 문종이 직접 7년동안 대리청정 기간을 거쳤으며... 실질적으로 세종의 말년 업적은 대부분 문종의 업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문종은 과학적 업적을 많이 쌓았고... 군사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오위진법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다만 세종의 죽음 이후 3년상을 치르는 동안 건강이 악화되어 어린 아들 단종을 남겨두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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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왕에 오를 단종을 걱정하여 문종은 황보인과 김종서 그리고 정분 등에게 단종을 부탁하였다. 권력을 둘러싸고 김종서 측과 수양대군 측의 충돌 이후 계유정난이 발생하여 수양대군 측이 김종서를 비롯한 단종 측근들을 몰아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어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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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숙부인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민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저주로 인해 수양대군이 문둥병에 걸리고... 아들이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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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비운의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단종의 생모인 세자빈 권 씨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만약 세자빈 권 씨가 살아있었다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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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할머니인 소헌왕후 역시 일찍 죽었다. 할머니가 살아있었다면...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살아있는데 반란을 일으켰을까? 명분 부족으로 수양대군을 따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 이전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이 일찍 죽는 사건 역시 없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3년 상은 멀쩡한 사람도 병들게 만들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어머니의 3년 상과 더불어 아버지의 상을 치렀으니... 문종이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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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할아버지인 세종이 매우 감탄을 했을 정도로 무척 총명했다고 전해진다. 김종서의 황표정사의 이미지로 단종이 매우 멍청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단종에게는 확고한 후견인이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참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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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예로 숙종의 경우 14살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그를 거스릴 신하들이 없었다. 일단 조선시대 왕들 중 누구보다도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기 때문이고... 특히 눈치를 볼 종친이 없었다는 점이 강력한 왕권을 다질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이다. 또한 대왕대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야심 많은 종친이 있었다고 해도 난을 일으킬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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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역시 정통성 부분에서는 꿀리지 않는다. 앞서 이성계가 개국한 이래 왕자의 난으로 둘째 정종이 왕위에 오르고... 이방원이 세제가 되어 3대 왕에... 그리고 첫째 아들 양녕대군의 비행으로 셋째 충녕대군이 4대 왕에 오른다.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최초 적장자가 왕에 오른 이가 바로 문종이며... 이어 왕세손이 된 단종은 그야말로 정통성을 가진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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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정통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단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받쳐줄 왕실의 확고한 후견인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 되었고... 결국 왕위를 찬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은 유배를 당하였는데... 강원도 영월쪽에 단종과 관련된 명소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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