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시대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견융의 공격을 받아 수도를 동쪽 뤄양(낙양)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 전국시대의 성립까지 약 360년 간의 전란 시대를 의미한다. 본래 주나라는 상나라의 제후국으로 계속되는 성장을 통해 상나라를 대신하여 새로운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중원의 지배자가 된 주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통치제도인 봉건제도를 마련하고, 직할지를 제외한 전국의 영토를 왕실의 혈족이나 공신을 제후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특히 주나라는 상나라를 침략을 합리화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명사상'을 마련하였다. '천명사상'은 주나라 사람들이 숭배한 '천'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천지자연의 법칙을 운행하고 인간사를 제어하고 있는데, 본래 천명을 가지고 있는 은나라는 하날의 신임을 잃어 주나라가 대신하여 천명을 받았다.
기원전 771년 유목민 견융의 침임으로 유왕이 피살되고 주 왕실은 도읍을 낙양으로 옮겨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자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중원의 제후들은 중원의 정치를 이끌었다. 이때부터 패자라는 개념이 새로이 생겨났다. 이 패자란 제후들을 모아 회맹을 가져 맹주가 되는 것으로 권위가 떨어진 주 왕실에 매년 조공을 바치는 댓가로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들을 감독 및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춘추시대의 명칭은 공자가 저술한 역사서 춘추에서 유래되었다. 일반적으로 춘추시대 이후 시대인 전국시대를 합쳐 춘추전국시대라고도 불리는데, 엄밀히 말해서 춘추와 전국 시대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각 제후국은 주 왕실의 권위를 인정하고 패자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해 다투었다면 전국시대는 제후국들이 주 왕실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통일전쟁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를 의미한다.
- 춘추오패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제후국은 제나라, 진나라,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가 있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제후국들이 존재했으며, 패자로서의 지위를 누렸던 강대국을 일반적으로 춘추오패라고 불렀다. 제후간에 맺어지는 회합이나 맹약을 회맹이라고 하는데 회맹의 맹주가 된 패자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
춘추시대 가장 먼저 패자에 오른 이는 바로 제나라의 환공(기원전 716년 ~ 643년)이다. 제 환공이라고 불리는데 독자들에게는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두번째 패자는 진나라(晉)의 23대 군주인 문공으로 다른 군주들에 비해 상당히 고생이 많았던 군주로 알려져있다. 세 번째 패자로는 초 장왕으로 즉위 초 방탕스러운 생활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간신을 속아내어 초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끌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당대 권위가 있는 학자들의 시선에 따라 나눠지는데 오나라의 왕 합려와 월나라의 왕 구천 혹은 진나라 목공과 송나라 양공 그리고 오나라 왕 부차를 꼽기도 한다. 어쨌든 앞서 언급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회맹을 이끌었던 패자를 춘추오패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