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979, 부마] 부마민주항쟁의 5일간의 기록!] KBS가 부마민주항쟁 40돌을 맞아 16일 오후 10시 1TV에서 '1979, 부마'를 방송할 예정이다. '1979, 부마'는 부마민주항쟁의 불씨가 된 부산대 출신인 배우 유재명과 함께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KBS 부산>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를 한 사건을 의미한다.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다. 

 

<KBS 부산>

 

이어 8월 11일 YH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YH무역 노동자 200여 명이 회사 측의 부당한 폐업 공고에 반대해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회사 운영의 정상화와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주장하며 농성 투장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1,000여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며 노동자들과 기자 및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등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였고... 이 와중에 노조 집행위원장이 사망하였다. 

 

<KBS 부산>

 

이 사건으로 김영삼의 의원직이 박탈되고... 이로 인해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은 크게 고조되었다. 특히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은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이 크게 자극되었다고 한다. 

 

<KBS 부산>

 

김영상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는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였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를 등을 외치며 파출소, 경찰서, 도청, 세무서 등을 파괴하였고... 이 과정에서 마산 및 창원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KBS 부산>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부산에서 약 천 여 명의 시민과 학생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고... 마산 및 창원에서 군을 출동시켜 약 500여 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지만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진정되었고... 이 사건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KBS 부산>

 

10월 16일은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날로 대학생이 주도한 엘리트 민주주의가 아닌 시장상인, 종업원, 직장인 등 다양한 시민들이 참가해 각자의 민주화를 외친 최초의 시민항쟁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이 현대사를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되지만... 부마시민항쟁은 크게 사회적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KBS 부산>

 

이에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KBS부산총국은 '1979, 부마'를 연출하였으며... 40년 동안 잊힌 항쟁이라고 말한다. 부마항쟁이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만큼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질 듯하다. 

 

<KBS 부산>

 

반응형

+ Recent posts